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샬롬! 주안에서 평안하십니까! 행복한 결혼 생활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죠. 크리스천 이은주님도 결혼할 나이가 되어 이런 고민으로 저희에게 질문을 올려 주셨는데요, 가족과 친구들은 다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데, 주변의 친구들을 봤을 때 물질적으로는 여유 있고 잘사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 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지 고민이 되시나 봅니다. 그럼 같이 한번 들어보실까요?

   크리스천은 사랑과 결혼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

   신앙 Q&A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제가 고민이 하나 있는데요,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니까 가족과 친구들이 빨리 결혼하라고 야단입니다. 그러면서 ‘돈 많고 잘 생긴 사람’을 만나야 경제적으로 편안하고, 또 체면도 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데,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기대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지는 않더라고요. 각자 바라는 게 있는 상태에서 만나서 그런지 상대방에게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불편하고 가식적으로 살면서 성격도 맞지 않아 매일 다투고, 심지어는 바람까지 피워 고통스럽게 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크리스천이라 사랑과 결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은주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이은주님:

   안녕하세요! 글을 보고 어떤 심정일지 조금은 이해됐습니다. 저도 전에 이은주님과 같은 고민을 해봤었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고 답을 찾게 되었는데, 결혼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고,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더욱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게 되면 고통 속에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사랑과 결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요? 이은주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가 아는 만큼 나눠 보겠습니다.

   저도 결혼 전에는 가족과 친척들이 자주 저보고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내려갔더니 친척들이 저에게 선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자리에 나온 그분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집과 차까지 있는 집안 좋은, 한마디로 ‘돈 많고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면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되고, 체면도 살고, 행복하게 잘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친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의 남편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였거든요. 준수한 외모에 돈과 권력 있는 집안의 아들로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였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하며 천생배필이니 결혼하면 꼭 행복하게 잘살 거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자주 다투고 싸우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2년도 안 돼 갈라서고 말았죠. 이치대로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는 결혼이 망설여졌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막막함 속에서 하나님이 떠올라 저의 어려움과 고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저는 많은 이들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실행의 길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즉, 사람들이 모두 겉으로 매우 부러워하는 것, 화려한 것, 매우 호화스러운 것, 사람들이 아주 우러러보는 그런 사람과 사물, 물건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상해 보이는 것인데, 사람은 모두 이런 것을 우러러본다. 보다시피,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사람의 참된 모습이 없다. 이런 것을 우러러보는 것은 전혀 의의가 없음에도,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성품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 중에서)

  『사람마다 마음속에 ‘세상에서 한자리 하는 사람들은 기품이 있고, 처세 철학에 뛰어나고 속내를 감추며 드러내지 않아. 교양 있고, 차림새가 품위 있어 보여….’라는 이런 생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다 이런 것을 부러워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마다 안에 이런 것이 있어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고 끌려갈 수 있다. … 사람의 대인 관계 및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은 지위와 세력, 돈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사람 안의 불신 요소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대함에 있어 외모와 돈을 추구하다가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고 고통스러워진 데에는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본성의 취미, 추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사람은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이 있어 사람 간에 감정과 우정을 중요시했고, 또 순수했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물론 싸우고 다툴 때도 있지만 대부분 평생을 함께하며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패괴되면서 사람들은 유명인들의 말에 휘둘리게 되었고, 각종 사악한 문화가 담긴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드라마와 소설 속의 ‘돈이 없으면 사랑도 못한다’, ‘남자 잘 만나려면 얼굴에 투자해라’,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 등의 사악한 시류들이 사람 마음속에 잘못된 가치관으로 깊이 뿌리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갔고 외모만 중요시하며 여자는 백설 공주, 남자는 백마 탄 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이 생겨 버렸죠. 게다가 권세에 빌붙으면서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집안에 돈 있고 세력 있는 사람과 만나야 자신의 체면이 서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람의 도덕성은 점점 타락해 갔고 인성도 갈수록 왜곡되고 변해 갔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사랑이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은 맘만 먹으면 원하는 배우자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내연녀와 내연남을 두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면서 사랑을 거래하고 있고, 결혼 후 이혼하고, 이혼 후 다시 배우자를 찾는 일이 흔하다 보니, 세상은 사악과 어둠이 극에 달하게 됐습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공직, 언론, 연예계를 막론하고 다 혼란스럽고 스캔들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랑과 돈 때문에 자살하거나 살인당하는 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사람의 본성이 사악하고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면 사람들은 잘못된 관점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에게 고통만 안겨 주고 있습니다.

   저는 ‘돈 많고 잘생긴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다’라는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사랑과 결혼의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배 드릴 때 형제자매들에게 이런 문제를 놓고 함께 교제해 보자고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말을 듣고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설교를 읽어 주었습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먼저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생각과 뜻이 맞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과 뜻이 맞는 상황에서 또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본인과 인성이 비슷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인의 인성은 좋은데 상대방은 안 좋은 사람을 선택하면 나중에 의견 충돌이나 다툼이 적지 않게 발생하게 됩니다. 반대로 본인의 인성은 좋지 않지만, 상대방은 좋은 사람을 선택하면 본인에게 득이 되게 되는데, 상대방의 이해와 포용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이런 부분을 다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설교 (6) 하나님 말씀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나이가 들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반드시 적합한 결혼 상대를 선택해야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득이 되고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의 선택으로 사람이 가는 길이 결정되고 종착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관건적인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설교ㆍ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추구와 실행 원칙> 중에서), “본인이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려 할 때, 어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느냐가 인생관, 가치관과 관계가 있을까요? 네,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일 본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과 합한다면, 즉 진리를 근거로 삼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은 곧 진정한 인생 길이고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결혼 상대가 사탄에 속하고 사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결혼은 성립되지 않는데, 동상이몽의 결혼으로 두 사람 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에게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느냐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설교 (3)ㆍ일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과 생명 성품 변화의 관계> 중에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설교를 듣고 저는 좋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과 직결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되느냐에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입니다. 따라서 인품 좋고 뜻이 맞는 사람을 배우자로 얻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죠. 두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같아야 하고, 살아가면서 공통된 언어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도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 진리를 찾아 해결하고 영적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다 이해하는 그런 결혼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을 때처럼 말이죠.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은 우상을 섬기고 온갖 사악하고 음탕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인을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맞이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이 인생의 대사이며 뜻이 맞는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돈과 물질적인 것들, 육적인 즐거움을 결혼의 기준으로 삼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혼하고 상대방의 인품이나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그리고 서로 가는 길이 같은지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 결혼 생활은 오래 갈 수 없을뿐더러 각자에게 고통만 안겨 주게 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육적인 즐거움을 위해 예쁘고 잘생기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지만, 상대방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자 결국 이혼으로 끝을 맺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는 배우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 후 오히려 신앙 생활을 심하게 반대해서 하나님을 믿는 길에 방해받고 핍박받아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본분을 이행할 수가 없게 되었고, 심지어는 사악한 조류에 휘말려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잃은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조금 깨닫게 되니, 저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크리스천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인품이 좋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외모가 어떤지, 집안이 어떤지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그 후 한 자매님이 저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배우자를 고를 땐 옳은 가치관으로 구해야 돼요. 그리고 또 우리가 누구의 손을 잡고 식장에 걸어 들어갈지, 누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일지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달린 거예요. 따라서 함부로 또는 충동적으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기다리고 구하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해요. 그게 크리스천이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할 자세죠.”

    그리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사람은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사실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고 알아야 할까? 이는 모든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 우선 너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다음 구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간다. 너는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에 순종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의 결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상상과 기대를 갖고 있든 우리의 배우자는 자기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각자의 운명에 달려 있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결혼 상대자를 정해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늙은 하인이 하란으로 가 이삭의 아내를 고를 때 진심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림으로써, 여호와께서 어울리는 배우자를 골라 주셨고 그 후 순조롭게 이삭을 위해 준비해 주신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저는 또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자기가 꿈꿔 왔던 ‘잘생긴 외모에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결혼 후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진 못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훌륭한 인품을 가졌고 취미도 같았으며 같은 추구 목표가 있어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부는 어느 정도 같이 살다 보니 상대방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부족한 점이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잘 통해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에 있어서 마음대로 자기 욕심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을 갖춰야 하고, 또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고 순종해 결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인 우리가 사랑과 결혼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자세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실행 방법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저는 답답한 마음이 확 트였고, 결혼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친척이나 친구들이 제게 누굴 소개해 준다고 할 때도 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 와 말씀의 진리로 사람을 분별할 수 있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상대방의 인품을 볼 때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욕심이나 호감으로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행하자 제 마음은 해방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사랑과 결혼에 대해 제가 깨닫고 알게 된 것들을 다 나누었는데, 이은주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또 고민이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글 남겨 주세요. 저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교제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앙 Q&A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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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화찬란한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서, 자신의 결혼에는 돈이 부족했다면서 원망했습니다. 그 때문에 남편과 냉전에 들어갔고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녀는 돈이 있는 결혼은 빛나고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쓰라림과 고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각이 확 트인 그는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의 결혼이 가장 좋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요? 다음의 이야기를 보실까요

   새벽녘, 한 줄기 햇빛이 방안을 비추자 마루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첸후(千蕙)이는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 리리(丽丽)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첸후이, 나 다음 주에 결혼해, 꼭 와줘!”

   친구가 결혼한다는 희소식에 첸후이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전에 리리에게 괜찮은 남자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는데, 리리가 다 싫다더니. 이번에는 결혼하는 걸 보니, 남편감 집안 조건이 꽤 괜찮나 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리의 결혼식 날, 첸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를 했습니다. 10시 쯤, 첸후이는 리리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신혼집 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널찍한 거실, 아름다운 장식품, 세련되고 럭셔리한 가구, 이렇게 큰 집은 정말 ‘금빛 찬란’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절로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쩐지 리리가 결혼을 한다더니, 남편이 정말 부자인가 보네!’
나중에 결혼식장에 간 첸후이는 그 화려함에 더욱 기가 눌렸습니다.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올리는 예식에다, 사회자는 현지의 유명한 MC였고, 웨딩카 행렬도 전부 다양한 브랜드의 고급차였습니다. 눈앞의 이 모든 광경에 첸후이는 부러우면서 질투가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같이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든 외모든 내가 리리보다 나았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러 면에서 리리보다 못하구나. 결혼식의 화려함은 차치해도, 지금 내가 사는 집도 오래된 단층집이잖아. 리리가 지금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내가 평생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하겠지.’ 첸후이는 낙담하며 당초 배우자 선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만 성실하고 좋으면 미래에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고 섣불리 능력 없는 남편을 고른 것입니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기필코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부자를 고를 것입니다. ‘아, 지금은 다 늦었어!’ 첸후이는 어쩔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각자 남편의 직업, 수입, 집, 차 등등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니 첸후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자리가 불편해진 그녀는 간단히 음식을 먹고 나서 총총히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첸후이의 머릿속에 계속 결혼식의 광경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자기보다 잘 살았고, 자신을 돌아보니, 돈도, 차도 없고, 아직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있으니, 호화로운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답답해서 자기가 지금 이렇게 못 사는 게 다 남편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집안 조건이 좀 좋았더라면,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 나도 집 있고 차 있는 중산층 생활은 할 수 있었을 테고, 친구들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첸후이는 집안의 전부가 다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히 남편의 고지식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하면 꼬투리를 잡고 남편에게 성질을 부리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기분이 나쁠 때마다 얼른 그를 달래주었습니다. 남편이 자기한테 잘하고, 무슨 일이든 양보해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억울하고, 이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목하고 따뜻했던 가정생활이 지금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첸후이는 남편이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가사일을 도와주고 다정하게 대화도 나눴는데, 지금은 일이 없으면 휴대폰만 쳐다보고 게임하며, 그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편의 이상 행동에 첸후이는 더욱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당신한테 시집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첸후이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고, 형제자매와 자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첸후이는 그들이 다들 소박하고, 선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단순한 마음으로 털어놓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 해결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사이에서는 상하 귀천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서로를 깔보지도 않았고 서로 돕고, 일으켜 세우며, 공급해 주었습니다. 다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하며 사람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첸후이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전에 없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 후, 첸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누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될지는 알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자신의 배우자를 예상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구애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너에게 관심이 있을지, 너의 반려자가 될 수 있을지를 개인이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와 삶을 함께할 배우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네 삶의 일부로 들어오고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의 형태는 천태만상이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에 불만을 가진 부부도 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아우르는 결혼도 있다. 천생연분인 부부가 있고 비슷한 집안의 상대와 결혼한 부부도 있다. 행복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결혼도 있다. 동경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있는가 하면 몰이해와 경멸을 자아내는 결혼도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결혼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절망적인 결혼도 있다. 결혼 생활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결혼에 충성하며 죽을 때까지 배우자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 생활을 아끼고 소중히 지키는 사람도 있다. 반면, 결혼을 체념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사람이 있고, 결혼을 저버리고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결혼을 통해 각 사람이 맡게 되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사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기에 바뀌지 않는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확 트인 그는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이 진작에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과 예식장에 들어갑니다. 결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첸후이는 남편과 만나서 사귀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이 배정하신 운명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해 모두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취향과 추구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말을 잘하고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능력 있고,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우리 요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원망 속에 살면서 상대를 차갑게 대하거나, 상대와 기싸움을 하고, 말다툼하며, 심한 경우에는 이혼까지 감행해 자신과 가족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이때, 첸후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순종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무능하다고 싫어하며 남편을 얕잡아보고 스스로 고통 속에 빠져 산 것입니다. 남편도 그의 안색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부부 사이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첸후이는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길 원하고, 더 이상 자신의 삶에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남편의 무능을 원망하지 않으며, 남편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면 예전처럼 그렇게 억지를 부리거나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남편과 화목하게 살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남편은 첸후이의 변화를 보며 그에 대한 태도도 누그러졌습니다.

   하루는, 첸후이가 친정에 가자 이웃이 물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직도 신혼 때 살던 단층집에 사세요? 아파트는 안 샀어요?” 첸후이는 마음이 흔들리고 당혹스러웠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이요.” 이웃이 말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 살려고 하는데, 깨끗하고 편안해서 살기 좋잖아요.” 첸후이는 이웃의 시선을 피하며 핑계를 대고 말했습니다. “저희 시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어요. 저는 단층집도 아주 좋은데요. 아파트는 나중에 생각해 보려구요.” 이웃이 떠난 후 첸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휴! 우리가 무슨 집 살 돈이 있어!’ 부지중에, 첸후이는 또 남편이 무능해서 자기의 체면이 깎였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첸후이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혼이 당신께서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이 저보다 잘 사는 것을 보면 그래도 원망스럽습니다. 남편이 제가 원하는 행복한 생활을 주지 못한 것 같고,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그리스도인의 생활: 이제는 경쟁하면서 살지 않게 되었네
이제는 경쟁하면서 살지 않게 되었네
   하루는, 첸후이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악한 기운에 물들어 계속해서 타락하고, 양심, 인성, 이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인격, 품성도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사람은 인격, 인성, 양심,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트렌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트렌드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트렌드라는 바람이 불 때 앞장서서 그런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트렌드에 물들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심지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매몰되거나 지배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원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 진리가 무엇인지 애당초 모르는 사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런 트렌드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탄의 생존관과 가치관,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을 대하는 방법, 사탄이 사람에게 ‘선사’한 생존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거부할 힘이나 능력이 없거니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그렇게 사람은 갈수록 사악해지고 교만해지며,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이기적이고 악랄해진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고, 가족 간의 사랑이 없어지며, 친척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이 사라지고, 사람 간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첸후이는 사람의 모든 고통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좇아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제일이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체면에 살고, 나무는 껍질에 산다’ 등등 사악한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돈을 숭상하고 물질적 향락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고, 양옥집과 별장에 살며, 호화 승용차를 끄는 등의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좇습니다. 아울러 이를 밑천으로 서로 높은 수준으로 비기고 자랑합니다. 돈이 있고, 잘 살면 잘난 사람이고, 그가 하는 말에도 기가 살아있고 모두가 부러워하며 아첨합니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점점 비현실적이고, 허영에 빠지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해 완전히 인성과 이성,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모두 집안 조건이 좋은지, 돈은 잘 버는지를 봅니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부귀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남자가 출세하면 여자도 존귀해진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시집 잘 가는 게 낫다’ 등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며 완전히 결혼관을 왜곡시켰습니다. 사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 쌍방이 함께 모든 책임을 지면서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결혼에 너무 많은 요구와 조건이 생겼습니다. 부부간의 감정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고, 거래로 가득합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면 결혼하고,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물질적 요구와 허영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그 결혼은 억지로 유지되거나 서로 미워하며 상처 주다가 심한 경우 이혼에 이릅니다. 지금 사회는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내연녀나 꽃뱀도 흔하게 보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깨달은 첸후이는 본인도 역시 사악한 시대 조류의 유혹을 받고 고통당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 그와 남편은 꽤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차 있고, 집 있고,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할 때, 그는 남편의 평범하고 무능함을 싫어했고, 매일같이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도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부부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서 집안은 예전의 화목하고 따스함을 잃었습니다.

   첸후이는 남편에게 대했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추구했던 생활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건 사탄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종의 수단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지 않았다면, 첸후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본인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에게 우롱당하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되고 심지어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첸후이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자에게 시집가서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의 남편은 밖에서 외도하고, 여색을 탐하면서 부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집안에서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 하인처럼 굽실거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둘 사이에도 진실한 감정이 없었고 자주 말다툼하며 싸웠습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만족을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없는 쓰라린 고통과 무기력으로 가득했습니다. 설마 그런 삶이 행복할까요? 첸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건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그는 마음속의 이런 허망한 것들을 내려놓고 남편과 화해했습니다.
이제는 경쟁하면서 살지 않게 되었네
이제는 경쟁하면서 살지 않게 되었네
    그 후에, 첸후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경쟁하면서 살지 않게 되었네『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첸후이는 감개무량했습니다. ‘예전에 사탄이 주입한 목표대로 살려고 했던 삶은 정말 고통스러웠어. 난 진리가 없어 사탄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헛되이 내 인생을 낭비한 거야.’ 그제서야 깨달은 첸후이는 잘못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다시는 사악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헛된 물질적 삶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남편을 바르게 대하고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기까지 헤아리니, 첸후이는 남편이 비록 돈이 없어서 그에게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을 주지 못하고, 허영심도 채워주지 못하지만 정직하고, 일처리가 신중해서 무슨 일을 하든 주도면밀하며, 그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억지를 부려도 남편은 다 양보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그의 믿음 생활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우월한 삶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첸후이는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배정한 결혼이 가장 좋은 것임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인이 부자인 남편을 선택해서 풍족한 삶을 살았더라도 생활은 먹고 마시는 게 다였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창조주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진리와 비밀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방법과 사악한 시대의 조류도 분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첸후이는 가난하든 풍족하든 적절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남편을 대하는 첸후이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쏟고 이해했습니다. 서서히, 그와 남편 사이의 소통도 늘어났습니다. 남편은 그의 변화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들의 가정도 화목해지고 온기가 돌았습니다. 첸후이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에 감사드렸습니다. 그의 지금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정확한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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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이 들어온 우정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쉬쟈오(許嬌)는 케이크 가게에서 제빵을 배우는 실습생입니다. 쉬쟈오의 제빵 실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 케이크를 만들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어느 날 쉬쟈오가 만든 케이크를 점장이 보게 되었습니다. 쉬쟈오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점장은 쉬쟈오를 데코 팀으로 보내 케이크 데코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쉬쟈오는 매우 기뻤습니다. 이렇게 빨리 점장의 인정을 받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이제 실력을 키운다면 더 큰 성장 가능성이 열리게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한 쉬쟈오는 뿌듯했습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어린 여자애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점장의 사랑을 받다 보니 기존 직원들의 질투를 샀습니다. 하지만 케이크 만드는 실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점장이 아꼈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도 내심 불만은 있으나 나서서 뭐라고 하진 못했습니다. 쉬쟈오는 꼭 열심히 일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어 더 많은 사람의 우러러봄과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질투하는 사람들도 자기를 달리 봐주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쉬쟈오는 더 열심히 실력을 키웠습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가게에는 새로운 실습생 아난(阿楠)이 들어왔습니다. 쉬쟈오와 아난은 나이도 비슷하고 모두 크리스천이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비록 같은 파트에서 근무하진 않았지만 쉬쟈오는 쉬는 시간마다 자신이 배운 기술을 아난에게 알려줬고, 케이크 데코에 있어서 아난이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습니다. 쉬쟈오의 열정적인 협조에 아난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한동안의 노력으로 아난의 실력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어 스스로의 힘으로 케이크도 만들어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난이 만든 케이크를 맛보고는 예쁠 뿐만 아니라 맛도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쉬쟈오는 아난의 친구로서 당연히 기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도 동료들은 계속해서 아난을 칭찬했고, 아난을 칭찬하는 소리가 쉬쟈오의 귀에 들렸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쉬쟈오는 씁쓸했고 사람들이 아난을 칭찬하는 일에 중독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본인이 케이크를 잘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이 정도로 칭찬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쉬쟈오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하긴 아난이 케이크를 잘 만들기는 하지. 사람들이 칭찬할 만도 해.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자 속에 있던 씁쓸했던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쉬쟈오와 아난이 수다 떨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난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자를 열어 보니 ‘아난아, 지난번 케이크 아주 잘 만들었더구나. 요즘 또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니?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점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문자를 본 쉬쟈오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쉬쟈오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점장님이 직접 아난에게 문자를 보내다니. 아난을 정말 아끼시나 보네! 지금 아난이 이것저것 다 잘하고 있는데 혹시 계속 이렇게 가다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늦게 들어온 아난을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동료들이 전처럼 날 우러러볼까? 아난이 잘 됐으면 좋겠지만 나보다 잘 되진 않길 원하는데.’ 그렇게 쉬쟈오는 자신을 응원하며 아난에게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난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아이디어가 넘치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쉬쟈오가 케이크의 제작 과정을 연구하고 있는데 아난이 잔뜩 들떠서는 쉬쟈오에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전문 파티시에가 됐어! 점장님이 그러시는데 내가 스승님보다 잘한대. 이번에 또 하나 만들었어. 얼른 봐봐.” 쉬쟈오가 휴대폰을 열어 확인해 보니 정말 예쁜 케이크가 있었습니다. 색감과 모양 모두 눈길을 끌었습니다. 쉬쟈오는 예쁜 케이크를 보면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진짜 예쁘다. 이렇게 예쁜 케이크라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겠어!”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고, 심지어 질투까지 났습니다. ‘점장님이 이렇게 아난을 예뻐하고 따로 문자까지 하는 데다가 아난이 파티시에가 되고, 이렇게 훌륭한 작품까지 만들어내니 사람들이 분명 아난을 더 좋아할 거야. 어휴! 예전엔 내가 아난보다 훨씬 잘했는데 이제 걔가 날 뛰어넘었네.’ 이렇게 생각하자 쉬쟈오는 풀이 죽었고 아난과 웃으며 얘기하기도 싫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쉬쟈오와 아난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뒤로 업무상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아난과 마음속 얘기를 하지 않았고 아난을 마주칠 때면 어색하게 안부만 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쉬쟈오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아난을 대해야 할지 몰랐고 쉬쟈오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난이 말했습니다. “점장님이 우리한테 케이크 한 개씩 만들라고 하셨어. 이번에 만든 케이크로 우리 직책을 결정하신대. 나는 재료 하나만 추가하면 끝나니까 너도 서둘러!” 점장이 케이크로 직책을 정한다는 말을 듣자 쉬쟈오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내가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점장님이 나는 실습생으로 그냥 두고 아난은 진급시켜주면 난 어떻게 점장님과 다른 동료들을 봐야 하는 거지?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비웃으면서 아난보다 못하다고 하면 어쩌지? 안 돼!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어!’ 그래서 쉬쟈오는 이틀 낮 하룻밤을 꼬박 새워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또 아난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연달아 밤을 지새우며 케이크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쉬쟈오는 다 만든 케이크를 점장에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난은 아직 그 재료를 사지 못해 케이크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쉬쟈오에게는 아난이 필요로 하는 재료가 있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쉬쟈오는 갈등했습니다. ‘우린 친한 친구인 데다가 같은 크리스천이야. 서로 사랑하고 도와줘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건데. 하지만 내가 이번에 아난을 도와주면 아난이 날 넘어서고 말 거야. 그렇게 되면 아난은 점장님의 인정을 받고 다른 동료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고, 나는 원래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말 거야….’ 쉬쟈오는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깊은 밤, 모든 불이 꺼진 시간, 지친 쉬쟈오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최근 아난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아난이 처음 인정을 받았을 때 나도 기뻐하지 않았었나? 아난이 갈수록 잘 돼가는 모습을 보면서 난 왜 점점 힘들어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좋은 친구였던 우리가 왜 라이벌이 돼버린 거지?’ 이런 질문들이 계속해서 쉬쟈오를 괴롭혔고, 쉬쟈오의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쉬쟈오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서로 사랑해야만 당신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난이 저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저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고 싶진 않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주시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문제의 근원과 실행의 길을 찾게 도와주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실행하겠나이다.’ 기도드린 후 쉬쟈오는 하나님의 말씀책을 펴서 읽었습니다. 『너희는 남들이 너희보다 뛰어나고 다른 사람이 인재가 되어 너희보다 두각을 나타낼까 봐 늘 두려워한다. 이것은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인가? 이것은 어떤 성품인가? 바로 악독한 것이다…! 지위와 체면 그리고 명예에 관련되니 각 사람마다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고 항상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하거나 ‘큰 그릇’이 되고 싶어하며, ‘스타’가 되려 하고 늘 유명해지고 싶어하며, 늘 자기를 부각시키고 싶어하며 양보하려 하지 않고 항상 겨루려 한다. 겨루지 않자니 내키지 않고 겨루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서로 빼앗는 것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질투하고 미워하며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왜 나는 나서지 못할까? 왜 항상 나는 빠지지? 왜 자꾸 그 사람보고 나서라 하고 나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는 거지?’라고 조금 원망을 한다. 원망이 있으면 억제하고, 억제할 수 없으면 기도한다. 기도하면 한동안 좋아지지만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임하면 역시 이겨 내지 못한다. 이것은 분량이 작은 것이 아닌가? 이런 정형은 올무가 아닌가? 이것은 사람에 대한 사탄의 패괴 본성의 결박이다.』(< 진심을 하나님께 맡기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늘 사탄의 패괴 성정 속에서 살면서 늘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늘 진리를 배반하며 늘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의 패괴 성정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며 진리를 얻지 못했기에 고민과 번뇌가 너무 많고 얽매임이 너무 많다….』(< 생명 진입에 있어 제일 관건은 본분을 하는 데서부터 착수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쉬쟈오는 자신이 고통 속에 살았던 것은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에 너무 신경 썼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쉬쟈오는 어려서부터 학교의 교육, 그리고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남들보다 뛰어나라’,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사탄의 법칙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무리에 있든 항상 우두머리가 되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얻자 자신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그 사람과 비교하고, 질투하며 그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쉬쟈오는 아난과 함께했던 나날들을 돌이켜봤습니다. 처음 아난이 훌륭한 케이크를 만들어 내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었을 때 쉬쟈오는 같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케이크 만드는 아난의 기술이 계속 향상되면서 동료와 스승님이 아난을 칭찬하고, 높이 평가하며, 심지어는 점장마저 아난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아난이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장님과 동료들이 생각했던 자신의 지위를 아난이 위협한다고 생각해 질투하고 멀리했습니다. 점장이 아난과 쉬쟈오의 케이크 작품으로 직책을 정한다고 했을 때는 아난이 이기는 모습을 보기 싫었고, 동료와 점장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야근도 마다치 않고 아난을 이기려고 케이크 만들기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아난이 재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분명 자신에게 있는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아난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과 모습들이 떠오르자 쉬쟈오는 그제야 자신이 보여준 모습이 모두 교만하고, 악독하고, 사악하며, 이기적인 사탄의 성품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아난과 이익을 두고 다투며 대립각을 세웠고, 지난 우정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쉬쟈오는 사탄이 주입한 가치관은 모두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 사항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면 명예와 지위의 노예가 되어 점점 교만해지고, 사악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며 갈수록 올바른 사람의 모습을 잃어가게 되어,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돕지도 못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해 비겁하고 타락한 성품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이 되고, 평안과 기쁨 또한 느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쉬쟈오는 자책하며 자신이 체면과 지위를 위해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아난을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쉬쟈오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 일을 통해 쉬쟈오의 타락한 성품을 보여주신 것은 쉬쟈오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괴롭히는 방식을 꿰뚫어 보아 다시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난을 쉬쟈오의 곁으로 보내신 것 역시 아난과 싸우거나 비교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쉬쟈오가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이의 장점을 배워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꾸길 바라는 마음이셨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인의 실력을 키울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제야 쉬쟈오는 자신을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고, 다시는 사탄의 성품 대로 살지 않겠다고 속으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쉬쟈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패괴 성정을 발견하기만 하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않겠는가?…그래서 이렇게 솔직히 말해서 제 자신을 드러내고 제 자신의 진상을 보여 주고 제 마음속의 진실된 생각을 말할게요. 제 체면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칠지언정 그것을 지키지 않고 저의 허영심을 만족시키지 않겠습니다.』(< 생명 진입에 있어 제일 관건은 본분을 하는 데서부터 착수해야 한다> 중에서), 『너는 겨루지 말고 빼앗지 말며, 나서는 일이나 체면을 세울 일이 임하면 머리가 터지도록 겨루려 하지 말고 빼앗으려 하지 말라. 너는 포기하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추천하여 나서게 하면서 자신은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네가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며 너의 정형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진심을 하나님께 맡기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쉬쟈오는 타락한 성품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그와 반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자신의 속셈과 못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법을 배우고 이런 것을 지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체면이나 지위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만 체면과 지위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크리스천 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쉬쟈오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쉬쟈오는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드리고 아난과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해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사탄의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배신하고 더는 사탄에게 농락당하거나 고통받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이튿날 쉬쟈오는 아난을 찾아가 최근 자신이 품었던 솔직한 생각과 자신이 했던 행동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이를 돌이켰는지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부족했다고 한 재료 나한테 있어. 얼른 가서 케이크 만들어. 내가 포장해서 보내는 거 도와줄게. 늦지 않게 해.” 아난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네가 나한테 마음을 터놓고 네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주다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주신 결과구나! 앞으로 우리 각자 장점을 발휘해 부족한 점은 채워주면서 잘 해보자!” 그때 쉬쟈오는 마음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습니다.

빨간불이 들어온 우정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후 점장은 쉬쟈오와 아난을 불러 둘 중 한 명에게 중요한 자리를 주겠다며 케이크 작품을 만들 때의 영감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들게 된 것인지 얘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점장의 말을 듣고 쉬쟈오는 다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번 발탁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 수준도 한층 더 깊어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쉬쟈오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익을 좇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내민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쉬쟈오는 마음속으로 본인의 마음을 잡아달라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결정적인 때일수록 사람이 더 순복할 수 있고 자신의 이익이나 허영심과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기억하는데…』(<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중에서) 그렇게 쉬쟈오의 마음은 순식간에 밝아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의중이자 진리를 실행할 기회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쉬쟈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야지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 따라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쉬쟈오는 오직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드리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쉬쟈오는 점장에게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이 케이크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고, 또 점장 앞에서 아난이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쉬쟈오의 마음속은 그간 느끼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 자유와 담담함이 찾아왔습니다. 쉬쟈오는 이런 감정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답변이자 축복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얘기를 들은 점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를 얘기하지 않았고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쉬쟈오와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선택되든 우리 가게에는 너희 둘이 서로 도와주고 힘을 합쳐야 해!” 그 후 아난이 쉬쟈오에게 말했습니다. “ 네가 날 봐줬다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사실 우리 이 팀에는 우리 둘의 협력이 필요해!” 쉬쟈오는 아난을 보고 편안하게 웃었습니다. 쉬쟈오는 중요한 것은 지위가 아니라 사탄의 타락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쉬쟈오와 아난은 예전 관계로 돌아왔습니다. 둘은 자주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둘이 함께 있는 곳에는 늘 웃음꽃이 만개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쉬쟈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자 사람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원칙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타락한 성품을 해결해주실 수 있고 우리가 남들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으며 ‘빨간불’이 들어왔던 우정에도 예전의 친했던 사이로 되돌려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쉬쟈오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체험하고, 실행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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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으려거든 포장부터 벗어 던져라

   일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시할까 봐 악착같이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애쓰고 몰라도 아는 척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 삶도 고달프고 업무 효율도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진실이 드러났을 때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이런 삶을 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맘 편히 일하면서도 동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찾은 싱가포르 — 남들이 비웃는 삶을 살았던 날들

  저는 2016년 처음 싱가포르에 온 중국인입니다. 당시 한 전자 제품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전자 제품 공장의 일을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매일 복잡한 기계 조작, 영어로 쓰여 있는 제품명, 아침 회의 때마다 나오는 복잡한 영어 때문에 저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간신히 하나를 외우면 또 새로운 게 나타났고 제게는 업무가 너무 버거웠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3개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가끔 동료에게 물어보면 동료는 귀찮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안 가르쳐 주셨어? 애초에 배울 때 모르면 좀 물어보지 그랬어.”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괴로웠습니다. ‘혹시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날 얕보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얼굴이 빨개져 작업장에서 동료들을 만나면 혹시라도 저를 비웃을까 얼굴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저는 ‘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중 모르는 문제가 생겨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혼자 끙끙 앓거나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수록 실수가 잦았습니다. 게다가 현지 언어도 잘하지 못했던 저는 의사소통에서도 애를 먹었습니다. 종종 못 알아듣거나 잘못 이해해서 팀장에게 혼나곤 했습니다. 팀장이 저를 혼낼 때마다 동료들은 모두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많은 사람의 비웃음이나 사고 다니는 광대 같았습니다. 그래서 동료들 앞에서 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고 매일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회의를 하는데 팀장님이 빠르게 말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회의 때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저는 혹시나 팀장님이 제게 질문하면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창피를 당할까 봐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했고 빨리 회의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절부절못하는 제 모습을 본 팀장님이 일부러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천칭 씨, 방금 제가 한 말 다 알아들으셨어요?” 팀장님이 던진 한마디에 모든 동료의 시선이 제게 꽂혔습니다.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모른다고 할 수 없어. 그랬다간 동료들이 다 나를 비웃고 무시할 거야. 만약에 팀장님이 사장님한테까지 보고 드린다면 더 부끄러운 일 아니겠어? 그랬다간 여기에 계속 있지 못할 거야!’ 그래서 전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 버렸습니다. 제 생각이라도 읽으신 듯 팀장님은 봐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방금 내가 한 말 다시 한번 해 봐요.” 그 말을 듣자 제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머리가 새하얘졌고 켕기는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팀장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사람들 앞에서 저를 혼냈습니다. “매일 고개도 푹 숙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아는 척이야! 진짜 여기 왜 온 건지 궁금할 정도다….” 팀장님의 마디마디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고 저는 뺨을 맞은 듯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너무 창피했고 억울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지 마! 울지 마!’ 하지만 서글픈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아침 회의 시간을 견뎌 냈습니다. 그날 저는 온종일 어떻게 일을 했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침에 팀장님이 저를 혼내고 그런 저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던 동료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문득 억울한 생각과 함께 화가 났습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내일은 또 어떻게 일을 하지. 또 사람들이 비웃는 걸 견뎌야 하나? 일도 힘들고 매일 욕만 먹는데 내가 왜 그걸 견디고 있어야 해? 차라리 직장을 관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무기력하고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무기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주시다 —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구나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으려거든 포장부터 벗어 던져라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으려거든 포장부터 벗어 던져라
   그러다가 문득 제가 크리스천인 것이 떠올랐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앞으로 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업무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날마다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시어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 주세요….’ 기도드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가벼워진 듯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사람 자체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무소불능이 될 수 있는가? 완벽해질 수 있는가? 흠이 없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든 일에 능통하고 다 깨달을 수 있고 다 해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만약 남에게 도움을 청하면 자신이 무능하고 약하고 남보다 못하다는 것이 드러나서 얕보인다고 여겨 그는 언제나 포장하려고 한다…. 무릇 정상 인성의 약점, 결점, 무식함, 우매함이나 혹은 알지 못하는 것을 그는 모두 감싸거나 포장하여 남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한사코 가장하기만 한다. 누군가 그에게 “이 일, 알고 있어요?”라고 물으면 생각해 보고 나서 “알아요.”라고 한다. “그럼, 얘기해 보세요!”라고 하니,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하는데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때서야 “저도 그 뜻이에요, 미처 말을 못했을 뿐이죠!”라는 말로 한사코 가장하고 자신을 포장한다. 이런 사람은 계속 뜬 구름 속에 있지 않는가?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고 여태껏 실속 있는 사람으로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됨에 있어서 만약 이런 길을 선택하여 늘 구름 속에 있으려 하고 땅에서 착실하게 걷지 않고 자꾸 날려고 하거나 뜨고 싶어 한다면 위험하다.』(<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함에 있어 구비해야 할 다섯 가지 방면의 정형>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작디작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누구나 결점과 부족한 점이 있고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모두 정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모른 채 모르고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자신을 포장하고 다 알고 다 이해한 척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만 심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거짓이 탄로 나거나 욕심이 만족되지 못하면 우리는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최근 제가 했던 행동들을 되돌아봤습니다. 저는 모르는 기술이 많으면서도 체면을 지키려고 다 아는 척 말하고 행동했으며 몰라도 아는 척하고 남에게 ‘할 줄 알아요’, ‘다 이해했어요’와 같은 생각을 심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상 실수도 잦고 덤벙거렸으며 큰 손실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회의 시간에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팀장님이나 동료들이 저를 얕볼까 거짓말을 하고 속였습니다. 그러다 진실이 탄로 나 모두가 제 결점과 부족함을 봤을 때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이런 환경에서는 계속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도망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 처했던 곤경은 사실 제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저는 사탄이 우리에게 주입한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그릇된 사상으로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 속에 있건 저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남들이 저를 높이 평가해 주길 바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고 체면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만 존엄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체면이 땅으로 추락해 다른 사람이 저를 낮게 평가하고 얕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다른 사람과 마주칠 자신도 없었고 혼자 화를 삭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악착같이 자신을 포장했고 모든 결점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제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지위가 무너졌을 땐 고통스러워하고 낙심하며, 다른 사람의 추측과 그걸 막을 생각만 하며 살았습니다. 당연히 삶이 힘들고 고달팠으며 매일 엄청난 압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제가 사탄의 독소에 농락당하고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의 근원이었음도 몰랐을 것입니다.

실행의 길 ─ 정직한 사람이 되자 편해진 마음

    그러다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상당히 많다. 너희가 사람 구실을 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며,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기 바란다. 또한 진리와 인성을 갖추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까지 포기할 수 있는 사람, 이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너희의 부족함, 타락, 패역 때문에 이런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이다.』(<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중에서), 『요컨대, 정직하다는 것은 일을 하거나 말을 함에 있어 무엇을 보태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훈언 3칙>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나님의 뜻과 실행의 길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앞이건 사람의 앞이건 우리가 정직한 마음가짐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길 바라십니다. 그래야만 인격과 존엄이 있는 사람이며 더욱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실에 맞고 분수에 맞는 언행을 하길 바라시며 거짓말이나 남을 속이기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예와 체면을 지키고 다른 사람이 저를 높이 평가하길 바라는 마음에 상사와 동료 앞에서 아는 척하고 속였으며 거짓된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며 사탄에게 약점을 내어 주는 꼴입니다. 만약 제가 계속 사탄의 독소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점점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 되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사라져 결국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더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겨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제 결점과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모르면 물어보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는 진정으로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다 —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리를 실행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침 회의 시간, 팀장님은 야간 조가 작업한 제품을 특수 처리하라고 하면서 처리해야 할 제품의 영문 명칭과 주의 사항을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이 너무 빨리 말해서 저는 어떤 제품을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난처해진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팀장님께 여쭤보자. 지금 여쭤보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 하지만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지난 회의 시간에 동료들 앞에서 저를 크게 혼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생각을 접고 다시 고민했습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사람들 앞에서 나를 혼내는 건 아닐까? 이런 작은 일 하나 때문에 혼나면 너무 창피하잖아! 더는 동료들의 비웃음을 살 수 없어. 그냥 혼자 알아서 해 보자. 특수 제품이니까 따로 표기되어 있을 거야. 이번엔 그냥 물어보지 말자. 그냥 알아들은 척이나 하지 뭐. 다음에 내가 모르는 중요한 뭔가가 나오면 그때 물어보자.’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품을 착각하면 어떡하지? 그땐 그냥 혼나는 거로 그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손해를 끼칠 텐데. 그럼 더 큰 사고 아냐? 게다가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말을 하라고 하셨어. 그런데 체면과 지위를 위해 고작 팀장님의 꾸중과 동료의 비웃음이 두려워 아는 척을 하면 그것 역시 나를 속이는 것 아냐? 그건 하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행동이야!’ 최근 며칠간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과 과거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항상 ‘척’하느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계속 체면을 지키려고 아는 척하고 나를 포장해야 해? 예전 방식 그대로 한다면 내가 결국 뭘 얻을 수 있겠어? 인격도 잃고 사람의 존엄성도 잃어 결국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이 되고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모습도 잃게 되어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될 거야!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결과란 말이야?’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며,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펴 준다. 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나는 진솔한 사람이 나의 진리와 나의 기대에 직면하는 것을 좋아하며, 더욱이 사람이 나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고 심지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만 내가 마음에 위로받을 수 있다.』(<종착지를 논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정직한 사람의 길을 걸으며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심지어 체면에 금이 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길 바라십니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되어 믿음직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일만 생기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비웃지는 않을지 신경 썼고 체면에 금이라도 가면 그걸 포장하고 감추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로 살고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제야 저는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달았습니다. 더는 과거처럼 저를 감추고 포장해선 안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봐야 합니다. 그때 저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저는 팀장님께 구체적인 제품명이 뭐였는지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은 “아까 안 들었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들었는데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은 저를 혼내지 않았을뿐더러 제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동료한테 물어봐.”라고 말했습니다.

수확 — 참으로 좋은, 정직한 사람

수확 — 참으로 좋은, 정직한 사람
모두 함께 직업에 대해 토론하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체면은 많이 구겼지만 마음속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습니다. 더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지 않았고 동료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예전처럼 고통스럽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은 후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는 저의 다짐이 더욱더 굳건해졌습니다. 이어지는 업무에서 물론 저를 대하는 팀장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동료들도 저를 비웃었으며 저도 가끔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지만, 저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허영과 체면을 내려놓고, 사탄의 독소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 팀장님과 동료들이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들었을 때는 정직하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절대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저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저를 비웃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제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직접 시범을 보여 주기까지 했습니다. 저를 대하는 팀장님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도록 회의 시간에 중요한 내용은 중국어로 한 번 더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스스로 포장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자 저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가 더 믿음을 갖고 계속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1년 후 어느 날, 사장님이 저와 면담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작업장에 자주 내려가 보진 않아도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네. 자네가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업무 중에 생긴 어려움이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다고 하더군. 자네가 정말 정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리고 그런 자네의 업무 태도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앞으로도 열심히 해 주길 바라네….” 사장님의 말을 들은 저는 매우 기뻤고 한편으로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저를 포장하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 주신 덕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서 효력을 발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수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과거의 고통과 압박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밝음과 누림, 기쁨이 자리했으며 영적으로도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훨씬 좋아졌고 삶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저를 이끌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직장에서 얻은 교훈 ㅡ 이익 앞에서 깨졌던 우정을 되돌리는 방법

2018년 9월 3일 월요일 맑음
   
     오늘로 미용실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 사장님은 샤오제(小潔)를 시켜 내게 업무를 알려 주라고 했다. 샤오제는 활발한 아이였고 사적인 얘기든 공적인 얘기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샤오제가 도와주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동료들의 장점만 빠르게 익힌 덕분에 내 업무 능력은 순식간에 향상되었고 일부러 나를 찾는 고객들도 점점 늘어갔다. 샤오제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화장품과 옷을 선물했고 우리는 더 친해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난 이런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기독교 신자가 직장에서 얻은 교훈
이익 앞에서 깨졌던 우정을 되돌리는 방법
2018년 10월 3일 수요일 흐림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내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고 나를 찾는 고객도 많아졌다. 나는 고객들에게 가게 물건을 판매하기도 하고 회원 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가게는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는 제도로 운영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고객 한 명을 더 받으면 급여도 더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그런데 요즘 샤오제와의 사이가 예전처럼 가깝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손님이 오면 분명 내가 먼저 인사를 했는데 내가 고객에게 줄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고객을 빼앗아 갔다. 내가 돌아오면 손님이 먼저 자기한테 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다. 예전에 샤오제가 날 많이 도와줬고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기독교 신자인데 그런 사소한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투는 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일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런 일들로 인해 요즘 우리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우리 둘은 겉으로 웃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거리가 생겼고 우리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비
 
   오늘은 정말 화나 죽겠다! 오늘 아침에는 샤오제가 내 눈앞에서 바로 고객을 빼앗아 갔다. 정말 불쾌했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끼리 눈앞에서 손님을 가로채 간다는 건 분명히 나 괴롭히겠다는 뜻 아니야?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한마디 해야겠어!’라고 생각하며 샤오제에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했다. 그때 내 단골손님이 가게에 찾아왔다. 나는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했고 서둘러 손님에게 마실 거리를 내왔다. 그런데 샤오제가 또 내 손님을 뺏어갔다. 내가 차를 들고 돌아왔을 때 샤오제는 내 단골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분이 나빴지만, 손님 앞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손님에게 차를 드리고 울적한 마음으로 그 방에서 나왔다. 종일 난 너무 우울했다. 간신히 퇴근 시간까지 버텼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가게에서 나왔다.

   이슬비가 흩날리고 있었고 나는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복잡하고 짜증 나는 마음에 오늘 샤오제가 한 일을 떠올릴수록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평소에 손님을 뺏어간 건 그렇다 쳐. 어떻게 내 단골손님까지 뺏어갈 수가 있어? 이건 대놓고 날 무시하고 내 밥그릇을 뺏어가겠다는 심보 아냐? 계속 참다간 직장까지 잃겠어! 안 돼. 내일은 꼭 한마디 해야겠어. 말로 안 통하면 사장님한테 가서 얘기해 봐야겠어!’
기독교 신자가 직장에서 얻은 교훈
이익 앞에서 깨졌던 우정을 되돌리는 방법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비
 
    가게 문을 열자마자 지난번 샤오제가 뺏어갔던 손님이 가게를 찾아오셨다. 손님은 곧장 내게 오더니 나한테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날 내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샤오제가 와서는 내 실력이 엉망이고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내 스승이니 다음에 오면 바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샤오제를 향한 분노로 가득했다. ‘손님을 뺏어간 건 그렇다 쳐. 손님 앞에서 내 험담을 하다니! 진짜 욕심도 과하지. 너무해! 사람 됨됨이가 글러 먹었어!’

   손님을 배웅한 후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대며 샤오제를 찾아갔다. “네가 내 손님한테 서비스하는 건 그렇다 쳐! 왜 손님한테 내 실력이 부족하다느니 그런 말을 해? 그건 완전 내 일을 망치는 거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라는 거야?” 샤오제는 말로 못 당하겠다 싶었는지 아무 말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후 샤오제가 사모님한테 가서 손짓 발짓 해 가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모습을 봤다. 퇴근할 무렵, 다른 동료가 내게 와서는 샤오제가 사모님한테 가서 내 잘못을 조목조목 일러바쳤다고 말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가 먼저 잘못하고선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사모님한테 날 일러바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진짜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로 기대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의리 없는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일 제대로 한마디 해서 이 화를 풀어야겠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계속 마주칠 텐데 그렇게 싸우고 나면 둘 다 여기서 일을 못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넘기자니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고통 속에서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정말 힘듭니다. 샤오제의 행동을 도저히 못 참겠어요.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디 제가 이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 맑음

    오늘 예배드릴 때 나는 마음을 열고 나와 샤오제 사이에 있었던 일을 형제자매에게 털어놓았다. 한 자매님이 내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사회에 깊이 물들고 봉건 예법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또한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같은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공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이 나날이 악랄해져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거나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이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자매님이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류가 사탄에게 타락한 근원과 사실, 그리고 진상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사탄에게 타락되기 전 우리는 정상적인 인성과 양심, 이성, 타인을 향한 사랑, 포용, 배려가 있었고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우리에겐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이익만을 좇는 사탄의 본성이 자리 잡게 되었어요. 수천 년간, 사탄은 끊임없이 유명 인사나 위대한 인물의 명언을 빌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사람은 돈을 위해 목숨도 걸 수 있다’, ‘조금의 이익이라도 반드시 쟁취하라’, ‘받은 만큼 돌려줘라’ 등 사탄의 생존 법칙을 우리 사회에 퍼트리고 우리에게 주입했습니다. 우린 그런 사탄의 독소와 법칙에 물들고 옮아 더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이익만을 좇는 자로 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었으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친척과 친구, 심지어 가족들끼리도 그렇게 했습니다. 얻어 낼 것이 있으면 웃으면서 대하고 얻을 것이 없으면 멀리하고 흩어졌습니다.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면 모두 따지고 심지어 적이 되기도 하였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 다투고 공격하며 상대방에게 보복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심과 사랑이 없어졌으며 과거 혈육 간의 정과 우정은 모두 원한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익을 얻기 위해 양심, 이성, 인성, 도덕을 잃었으며 사람다움도 사라졌습니다. 이게 사실이 아니던가요?” 나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독교 신자가 직장에서 얻은 교훈
이익 앞에서 깨졌던 우정을 되돌리는 방법

   자매님이 이어서 교제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사탄에게 타락된 사람들입니다.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샤오제는 이익을 위해 대놓고 자매님의 고객을 뺏어 갔어요. 그리고 자매님은 자매님의 이익에 해가 되자 샤오제를 원망하고 이익을 되찾아 오기 위해 다투었고 심지어 혈기로 싸우려고 하기까지 했어요. 사실 우리가 어떤 행동이나 모습을 갖고 있건 모두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사는 것이고,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고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농락당해 결국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하나님의 앞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수단과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과 비겁함, 이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성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낸다면 사탄에게 고통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에서 나는 문득 큰 깨달음을 얻었다. 샤오제와 내가 고객을 뺏는 일로 다툰 것은 모두 우리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이익만을 좇고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가 막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샤오제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그때 우리 사이에는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고 서로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손에 익고 샤오제보다 많은 손님을 응대하기 시작하니까 샤오제는 나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멀리했다. 그러면서 우정은 뒤로한 채 내 손님을 뺏어 갔다. 그리고 나는 내 이익이 피해 봤다는 이유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샤오제를 몰아붙여 곤경에 빠뜨렸다. 샤오제가 내 손님을 뺏은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 진리를 알지 못하고 타락한 성품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무슨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사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퉜으니 이 어찌 기독교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나는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었고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이익만을 좇는 사탄의 본성이 내게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만약 오늘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교제를 빌려 내 속에 있던 사탄의 성품을 분석해 주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사탄의 타락한 본성에 따라 어떤 일을 저질렀을지 모를 일이다!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동료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도 알게 되었고 이를 해결할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탄의 본성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사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나의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것이다!

2018년 11월 16일 금요일 맑음

   오늘은 가게에 일찍 나갔다. 아침 청소를 마치니 샤오제가 왔다. 나는 먼저 다가가서 샤오제에게 인사했다. 샤오제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내게 대답해 줬다. 나는 매우 기뻤다. 잠시 후, 가게에 손님 한 분이 오셨다.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려던 찰나 샤오제가 앞서 손님 앞으로 가서 손님을 데리고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따뜻했던 내 마음에 누가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부은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람에게 잡힌 잔뜩 성난 청개구리처럼 분노와 원한, 복잡한 마음이 섞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샤오제가 먼저 고객을 맞이하게 한 내 느린 행동을 탓했고 오늘 먼저 샤오제에게 다가가 인사한 자신을 후회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다. 『정상 인성에는 몇 가지 측면이 포함되느냐? 식견, 이성, 양심, 인격, 이 측면에서 정상 수준에 도달하면, 네 인성은 합격이다. 정상인의 모습,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운 모습이면 된다. 그 이상의 외교를 할 정도의 높은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정상인이 갖춰야 할 이성,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추고, 최소한 정상인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자질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복잡한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라고 하셨으며 이성적이고 양심적이며 인격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하셨다. 오늘 손님이 가게에 오셨을 때 나와 샤오제는 고객을 응대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다. 그 돈은 누가 벌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먼저 응대하는 사람이 그 돈을 벌게 되어 있었다. 만약 샤오제가 먼저 돈을 벌었다고 해서 샤오제를 미워한다면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탄의 성품으로 살며 내 이익만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익을 위해 샤오제와 다투고 그것 때문에 샤오제에게 먼저 인사하고 화해한 것을 후회한다면 그건 조금의 이성이나 인격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너무 부끄러워졌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또 생각났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배치한 운명에 달려 있다.』(<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그렇다. 내가 매일 얼마의 돈을 벌고, 평생 가난하게 살지, 아니면 부유하게 살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것이다. 이는 결코 내 능력이나 다른 사람과 다퉈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얼마를 벌던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샤오제와 손님을 놓고 다툰 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게 되었으며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 다른 손님이 한 분 오셨고 그 손님이 내게 먼저 와서 시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배치와 축복인 것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점심 무렵에 손님 한 분이 또 가게에 오셨다. 샤오제와 또 다른 동료인 샤오가오(小高)가 모두 손님을 응대하려고 갔는데 이번에도 샤오제가 빨랐다. 그런데 손님이 가자마자 샤오가오가 샤오제의 뺨을 내리치는 것이 아니던가! 그 행동에 샤오제는 깜짝 놀랐고 나도 그 광경을 보자마자 샤오가오를 끌고 가 타일렀다. 그리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샤오가오와 샤오제가 이익 때문에 손찌검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락한 인류가 사탄의 성품으로 살아감으로써 점점 흉악해 지고 악독해 지며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시작이고,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의 계승자요, 발현자이다….』(<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후 매우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이익만을 위해 다투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나 관심, 사랑이 없었고 그저 동물처럼 살고 있었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다. 땅이나 먹이를 뺏기 위해 서로 공격하고 싸우고 다투며 죽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사는 세계도 똑같지 않은가? 작게는 개인부터 크게는 국가까지 모두 이익을 위해 다투고 죽이며 인성과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나와 샤오제처럼 말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지 않으셨다면 나도 이익을 위해 계속 샤오제와 다투고 있었을 것이며 결국 손찌검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사심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류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진리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해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내며 빛과 행복 속에 살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의 자비, 그리고 아름다움과 선함은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내가 하나님의 앞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과 구원을 받은 것임을 깨달았다!

2018년 12월 7일 금요일 맑음

   최근 샤오제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아마 계속 내 손님을 뺏어갔는데 중요한 순간에 내가 먼저 손을 뻗어 도와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 사이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가게에 손님이 오면 가끔 샤오제는 먼저 손님을 나한테 양보하여 내가 손님에게 서비스해 드릴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한다. 심지어 손님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내가 샤오제를 대하는 태도를 본 다른 동료들도 나를 대단하다고 여기고는 가끔 먼저 나서서 손님들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어 얻어 낸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이 가게에 온 지 넉 달이 되었다. 이 기간 나는 현실 생활 속에서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고 깨달아야만 일을 정확히 볼 수 있고 행할 길이 있음을 깨달았다. 진리를 실천해야만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아낼 수 있고 마음도 든든하고 편안해지며 떳떳하게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는 아무리 좋은 사이도 순식간에 적이 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우리가 진리를 실천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탄의 성품으로 살지 않으며 기독교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내니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살면서 어떤 상황이나 사람, 일이 닥쳤을 때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아 나의 타락한 성품이 드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깨우침을 주고 나를 이끌어 주시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천에 옮긴다면 나는 계속해서 타락함을 벗어내고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경쟁자와 친구가 되다


   “동생! 정말 마음도 넓지. 난 예전에 동생 가게 앞에서 동생 일거리를 빼앗았는데 화는커녕 도리어 내게 고객을 소개해 주다니.…” 경쟁자인 샤오롄(小連)이 부끄러운 듯 말했습니다.

   샤오롄의 말을 들으며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덕분에 저는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샤오롄과도 경쟁자에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제게 찾아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 낸 효과입니다.…

잘 되는 사업에 경쟁자의 질투를 사다

    주님의 은혜 덕분에 저의 수선집은 개업할 때부터 계속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같은 업종에서 일한 사람들은 다 저를 부러워하고 질투했습니다. 심지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 일거리를 빼앗아 가려고 했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멀지 않고 같은 수선집을 하는 샤오롄은 특히 심하게 저를 견제했습니다. 샤오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게 앞에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 손님들에게 저는 아직 배우는 단계여서 실력이 부족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가게에서 질이 떨어지는 천을 쓰면서 가격만 높게 받는다는 등의 헐뜯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내 일을 빼앗아 가는 건 그렇다고 쳐. 내 뒤에서 욕까지 하고 다니다니. 이건 내 밥줄을 끊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정말 너무해. 앞으로 장사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당장이라도 샤오롄에게 달려가 한바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포용심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참았습니다. 하지만 샤오롄은 계속해서 제 일을 가로채 갔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샤오롄과 경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좋은 천을 썼기 때문에 사실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감을 더 많이 가져오기 위해 저는 일부러 가격을 낮췄습니다. 덜 버는 한이 있어도 샤오롄에게 고객을 빼앗기긴 싫었습니다.… 매일 샤오롄과 경쟁하는 생각만 하다 보니 성경을 보거나 기도를 드릴 때도 예전만큼 마음을 다하지 않았고 가끔은 예배조차 까먹었습니다. 저는 다툼 속에 살고 있었고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헤어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경쟁자와 친구가 되다

일감을 빼앗고 고통 속에 살다

   그 후 숙모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죄가 없는 육신으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죄의 근원은 제거되지 않았고 죄를 자백하고 죄를 저지르는 상황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육신으로 오신 것은 말씀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숙모의 말을 들으며 저는 한 줄기 희망을 본 듯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매일 죄 속에서 살며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우리에게 아직 타락한 성품이 많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역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 말세 사역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서서히 고통스럽고 답답했던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진리가 저의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자들이 제 일을 뺏으려고 할 때면 저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얼마 후 샤오롄은 우리 가게에서 1~2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놓고 제 손님을 뺏어 가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제 단골이 가게로 거의 들어올 뻔했는데 샤오롄의 ‘열정’에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고객이 제 가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샤오롄이 고객의 팔을 잡고 자기 매대로 끌어당겼습니다. 샤오롄의 행동을 보면서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각자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경쟁하는 건데 일부러 우리 가게 앞으로 와서 내 일감을 뺏어 가다니? 계속 이러면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내가 여기서 어떻게 버텨?’ 생각할수록 화가 난 저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와 샤오롄은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가게를 드나들 때면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도 샤오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샤오롄이 밖에서 호객하는 소리가 들리면 저는 순식간에 화가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내 밥그릇을 뺏어 가다니. 대체 돈을 벌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해도 너무 하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샤오롄을 쫓아내 우리 가게 앞에 매대를 놓지 못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신경전 후에도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옆 가게 언니를 찾아가 하소연하면서 샤오롄을 쫓아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언니는 샤오롄의 동생이 이 지역을 꽉 잡고 있다며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휴! 샤오롄을 쫓아내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았고 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전보다 적은 돈을 버는 상황에 저는 샤오롄이 너무 미웠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샤오롄을 쫓아내고 저를 대신해 화풀이를 해 달라고 부탁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상기시키고 언행이 이방인과 똑같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또 참았습니다. 하지만 제 속은 뒤집혔고 매일 화를 참느라 속에서 열불이 났으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실체를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매님이 예배드리러 저를 찾아왔고 저는 제 어려움과 힘든 점을 자매님에게 털어놨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하기 전에는 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했으며, 이성과 양심이 건전하고, 인성이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에는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이성과 양심, 인성이 무감각해지고 사탄에 의해 파괴되었다.…』(<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잔혹한 인류야!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이냐?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느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중에서)

경쟁자와 친구가 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류는 정상적인 인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양심적이고 이성적이었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서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양심과 이성도 잃어 더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거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탄의 문화와 교육, 유명 인사의 말에 물들어 계속해서 우리에게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사람은 돈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한 푼이라도 많이 얻는 자가 승자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사탄의 생존 법칙을 주입했고 그런 생존 법칙에 해를 입은 우리는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이익만을 좇게 되었습니다.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무슨 일을 하건 항상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다투며 속였고 그렇게 정상적인 대인 관계는 사라졌습니다. 가족, 친구, 형제, 부부, 부모와 자식을 막론하고 자신의 이익이 피해를 보게 되면 사사건건 따지며 서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 적이 되고 일부러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복수했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점점 이기적이고 음험하며 사악해졌습니다. 양심과 이성을 잃고 정상적인 인성도 잃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샤오롄은 사탄의 독소로 살고 있으며 인정이나 도덕은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매님과 다투고, 이기적이며 비겁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샤오롄이 자매님의 일을 빼앗아 갔을 때 자매님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샤오롄과 다투고 암투를 벌였으며 심지어 다른 수법을 동원해 샤오롄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머릿속에는 그 일 때문에 복잡하고 힘들었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면서 받은 고통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탄에게 타락한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그건 우리가 사람을 타락시키고 고통을 주는 사탄의 계략과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았을 때의 고통, 그리고 결과를 알게 하시어 우리가 사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살면, 너의 마음 깊은 곳이 밝아지고, 편안해지며, 비할 바 없이 달콤해, 참된 삶을 얻었다고 느껴질 것이다.』(<진리를 추구해야만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진리이자 길이며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점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는 우리가 행동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다양한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고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며 더는 사탄의 농락과 고통 속에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결 가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 얼마의 돈을 벌고 어느 정도의 부를 쌓으며 부유하게 살지 가난하게 살지 하나님께서 이미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누구도 빼앗지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것으로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면 우리는 그걸 강제로 가져올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고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으며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살 수 있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타락한 성품과 철학으로 살며 사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툰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고통스럽고 점점 인성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미움과 증오만 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로 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한 푼이라도 많이 얻는 자가 승자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제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샤오롄이 제 일을 빼앗고 제 이익에 피해를 주자 저는 겉으로 참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끙끙 앓았습니다. 샤오롄이 뻔뻔하게 매대를 제 가게 앞으로 옮겨 대놓고 일감을 뺏어 가 이익에 큰 타격을 주자 제 속에 있던 사탄 본성이 드러났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이고 사악한 성품에 따라 샤오롄과 다투고 싸우며 심지어 샤오롄을 쫓아낼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질투와 다툼, 그리고 타인을 향한 원망 속에 살았고 저는 사탄에게 엄청나게 고통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장사가 잘되고 못되는 거라던지 매일 얼마를 벌지, 평생 어느 정도의 부를 쌓을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샤오롄이 제 일감을 얼마나 뺏어 가는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저는 다시는 사탄의 철학이나 타락한 성품으로 살면서 매일 이익을 위해 샤오롄과 싸우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런 삶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 제 사업을 하나님께 모두 맡겨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찬양을 듣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했고 종종 형제자매와 진리를 교제하였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샤오롄도 예전만큼 밉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알고 원한을 내려놓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샤오롄이 또 우리 가게 앞에서 손님을 뺏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샤오롄은 “이쪽으로 오세요. 좋은 가격에 드려요.…”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한 고객이 거의 우리 가게로 들어왔는데 샤오롄이 소리치는 바람에 손님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또 화가 났고 샤오롄과 한바탕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곧바로 제가 또 사탄의 성품으로 살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는 것은 사탄이 주는 고통이고 스스로 고통 속에 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샤오롄이 제 일감을 뺏어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화나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샤오롄을 향한 원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시어 내가 당신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더는 사탄의 성품으로 살지 않으며 샤오롄을 향한 원망을 버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희 모두가 나와 협력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진입할 줄 모르고, 실제적인 훈련을 할 줄 모르며, 실제적인 일이 임하면 차분하고 침착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자기가 먼저 나선다. 너희에게 일러 주겠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영원히 내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다!』(<제39편> 중에서)

경쟁자와 친구가 되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낸 것이 바로 저의 실제 모습입니다! 저는 말세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보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만이 올바른 삶의 방향이라는 것을 알며 기꺼이 진리를 실천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런 환경에 맞닥뜨리면 저는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계속 제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제 이익에 피해를 주면 그 사람과 다투려고 했습니다. 여기는 조금의 인성도 남아 있지 않으며 너무나 비천하게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욥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욥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길을 지켰습니다. 강도가 욥의 재산을 뺏어 갔을 때 혈기나 인위적으로 빼앗긴 재산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투지도 않았으며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모든 권능에 진실한 인식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며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건 거두시건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그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섰으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축복하며 더 많은 재산을 주셨고 그렇게 욥은 만족스러운 삶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타락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과 다퉜고 타인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제때 저를 이끌어 주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천할 것입니다. 물론 욥에 비할 수는 없지만 저는 욥처럼 개인의 이익과 타인을 향한 편견, 원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며 제 실제로 살아 내어 사탄을 수치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택해 주시고 당신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듣게 해 주시며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알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말씀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실체를 알려 주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제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계속 샤오롄과 다투고 사탄에게 농락당하며 고통받아 사람의 존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이 제게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당신의 말씀에 따라 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 내어 당신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기도드린 후 분노가 가라앉았고 장사가 잘되고 못되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힘이 닿는 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저는 매일 알찬 삶을 살았고 샤오롄을 향한 분노도 조금씩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지고 든든해졌습니다.

친구가 된 경쟁자

   어느샌가 일이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너무 바빠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마음속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장사가 잘되고 못되고는 샤오롄이 제 일을 뺏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번 저를 일깨워 주시고 깨우침을 주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아직도 샤오롄과 다투고 있었을 것이며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으며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예배드릴 때 저는 제 일을 샤오롄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샤오롄은 매우 기뻐하면서도 제 행동에 놀랐습니다. 주변에서도 예전에는 일감을 두고 샤오롄과 싸웠던 제가 먼저 나서서 샤오롄에게 일을 주는 모습을 보며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샤오롄이 손님을 뺏어 가진 않을지 걱정되지 않아? 경쟁자는 다 원수야. 어떻게 원한을 내려놓고 친구가 될 수 있어?”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놀람과 함께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제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말세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진리가 제게 사탄의 그릇된 생존 법칙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사탄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을 꿰뚫어 보게 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살고 일을 해야만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낼 수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사람의 생명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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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찬양MV] <헛되이 살지 않으리>

     하나님 함께하는 기쁨을 찬양하고 헛되이 살지 않고 공허한 인생을 살지않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며 진리 길생명되신하나님을  따라가리라 신나게 노래하는 모습 함께 봅시다~


 [아카펠라 찬양MV] <헛되이 살지 않으리>

영상 소개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오늘 운 좋게 하나님 만나 그분의 역사 체험하게 되었네
성육신하신 실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네
기묘하고 두려운 하나님 행사 보았네
하루라도 헛되이 살지 않으리
그리스도는 진리, 생명이시네
인생의 비밀 알게 되어 광명 길에 들어섰네
다신 찾을 필요 없네 모든 것 환해졌네
하나님, 평생 당신을 후회 없이 사랑하리
진리 찾았으니 영생 얻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생 보람 있고 공허하지 않네 본분 잘해 하나님 증거하리
하나님께 칭찬받고 구원의 은혜 받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우리 삶 풍부하고 충실하네
하나님, 평생 당신을 후회 없이 사랑하리
진리 찾았으니 영생 얻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누가 우리만큼 복 있으랴? 누가 우리만큼 운 좋으랴?
우리에게 베푸신 것 역대를 뛰어넘네
하나님 우릴 높여 주셨으니 더욱 하나님 위해 살리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리
하나님, 평생 당신을 후회 없이 사랑하리
진리 찾았으니 영생 얻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헛되이 살지 않으리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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